-
2012년 5월 24일 부산모터쇼에서 렉스턴 F/L 처음 공개 출시
-
2012년 1월 12일 코란도스포츠 출시
-
2011년 2월 22일 출시
-
2007년 4월 5일 기존 SUV를 뛰어넘는 차별화된 성능과 더욱 세련된 유러피언 스타일의 조화로 새롭게 탄생한 ‘뉴카이런’을 2007 서울모터쇼를 통해 선보이고 판매에 들어갔다. ‘뉴카이런’은 최신 SUV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한 미래지향적인 스타일, 중형 SUV 최고의 엔진 성능 구현, 최첨단 신기술과 첨단 편의 시스템 적용을 통한 최상의 상품경쟁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
2006년 4월 27일 2006 부산국제모터쇼 프레스데이에서 국내 유일의 5인승 SUT ‘액티언 스포츠’ 발표회를 갖고 공식 출시했다. ‘액티언 스포츠’는 5인승 승용공간과 화물 적재용 대용량 데크가 결합된 신개념 다용도 SUT(Sports Utility Truck)이다. SUT는 SUV의 파워, 세단의 세련된 스타일, 픽업의 다용도성이 결합되어 출퇴근 및 업무, 화물 운송 및 레저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 가능한 신 개념 크로스오버 차량이다.
-
2006년 3월 28일 최고급 대형 세단의 스타일과 국내 SUV 최고의 성능을 갖춘 ‘렉스턴II’를 개발, 워커힐 W호텔 VISTA홀에서 발표회를 갖고 판매에 돌입했다. ‘렉스턴Ⅱ’는 기존 ‘렉스턴’의 프리미엄급 럭셔리 이미지라는 명성을 이어받아 최고급, 고성능을 뜻하는 하이엔드(High-End) SUV 시장 개척을 목표로 개발되어 품격과 성능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실현했다.
-
2005년 10월 13일 ‘C100’이란 프로젝트명으로 26개월간 개발한 ‘액티언(Actyon)’ 보도발표회를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갖고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했다. 독창적 스타일과 145마력 동급 최고 성능을 겸비한 엔트리급 SUV ‘액티언’은 쌍용자동차가 세분화 추세에 있던 국내 SUV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미래 지향적인 스타일과 최첨단 기술로 국내 엔트리급 SUV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개발한 2,000cc급 5인승 SUV다.
-
2005년 6월 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D100’이란 프로젝트명으로 2년 여의 기간을 거쳐 개발한 ‘카이런(Kyron)’이 공개됐다. ‘유러피언 액티브 SUV’ 스타일로 명명된 ‘카이런’은 SUV의 파워, 세단의 정숙성과 승차감, 스포츠쿠페의 세련된 디자인을 두루 갖춘 유럽 스타일의 세단형 SUV이다.
-
2002년 9월 5일 국내 업계에 전인 미답인 SUT(Sports Utility Truck) 시장 개척을 위해 개발된 ‘무쏘 스포츠(Musso Sports)’가 공개되었다. SUT란 SUV(Sports Utility Vehicle)의 장점인 안전성을 바탕으로 4∼5명이 탑승할 수 있는 승용형 승차공간을 유지하면서 개방된 화물공간에 각종 레저 장비 등을 적재할 수 있는 픽업의 활용성을 더한 것으로 경제성이 뛰어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차량이다.
-
2001년 8월 30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럭셔리 세단의 품격과 주행성능을 모두 갖춘 새로운 개념의 최고급 SUV ‘렉스턴’이 소개됐다.
-
휴가철을 맞아 7월 26일부터 8월 10일까지 16일 동안 강원도 낙산해수욕장에서 4륜구동 비치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번 '무쏘 코란도 파워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전문 드라이버와 일반인이 동승해 통나무다리 바위험로 사선통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인공장애물을 통과함으로써 4륜구동 차량의 묘미를 만끽 할 수 있다.
-
1996년 7월 19일과 20일 이틀동안 무역센터 코엑스 3층 특별관에서 ‘신형 코란도’ 신차발표회를 통해 그 모델을 일반에 공개했다. ‘신형 코란도’는 1993년부터 3년간 1천 2백억 원의 투자비를 들여 새롭게 개발한 4륜 구동차로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뜻을 가진 기존 ‘코란도’의 브랜드 네임을 승계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손명원 쌍용자동차 사장 및 임직원들과 3천여 명의 일반인들이 참석하여 대 상황을 이뤘다. 8월 22일부터 고객에게 인도되기 시작했다.
-
1994년 8월 24일 ‘코란도 훼미리’의 후속 모델로 성능과 디자인을 대폭 개선해 새롭게 선보인 ‘뉴훼미리’는 2,300cc 79마력의 고성능 벤츠 엔진을 장착하고 각종 첨단 매카니즘을 적용한 6인승의 4륜 구동차로 당시 동급 차량 중 최고의 주행성능을 자랑했으며, 가격을 대폭 낮춰 동급 차량 중 최저의 가격대를 실현했다.
-
1993년 8월 12일 한국종합전시장(KOEX) 대서양관에서 ‘무쏘’ 신차발표회를 갖고 가솔린엔진 2개 모델, 디젤엔진 3개 모델 등 5가지 모델을 공개했다.
-
-
1993년 아시아자동차는 ‘ROCSTA2’를 개발, 시판했다.
-
1992년 11월 9일 기존 ‘코란도 훼미리’에 각종 최첨단 장치를 적용하여 승차감과 안전성을 대폭 향상시킨 ’93년형 ‘코란도 훼미리’를 개발했다.
-
코란도 훼미리 선호 고객이 늘어나며 Station Wagon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현대정공에서는 일본 미쓰비시의 PAJERO를 국내에 도입하여 1991년 말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갤로퍼 L.W.B’
-
‘코란도 훼미리’ 선호 고객이 늘어나며 Station Wagon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현대정공에서는 일본 미쓰비시의 ‘PAJERO’를 국내에 도입하여 1991년 말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갤로퍼 S.W.B’
-
1990년대 들어 국내 자동차 시장에 4WD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아시아자동차는 군대에 납품하던 군용 지프를 개조하여 ‘ROCSTA’를 생산해 4WD 총 시장 규모를 증대시키는 데 큰 몫을 하였다.
-
1988년 11월 21일 국내 최초의 Station Wagon형의 다목적 차량인 ‘Korando Family’를 선보여 국내 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
1986년 6월 날로 더해가는 인기 속에 고객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코란도5’, ‘코란도6’, ‘코란도 밴’을 부드러운 곡선과 현대적인 스타일의 뒷모습으로 새롭게 개발, 출시됐다. 스타일 변화와 함께 모든 내부 장착물을 고급화했으며, 전 차종에 ‘라미네이트’ 안전 유리를 사용해 충돌 시에도 승객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고, 앞뒤 유리와 측면 유리의 폭을 넓혀 시야를 개선, 안전운행과 쾌적한 주행감을 더욱 높혔다. 한편, 육중하고 박진감 넘치는 코뿔소를 이번 ‘코란도’ 캐릭터로 채택해 후드 위에 적용함으로써 더욱 강인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
1985년 2월 거화와 동아자동차 기술진이 협력, 지프의 모델을 다용도 대중형으로 개선한 코란도 ’85를 개발, 출시했다. ‘코란도 훼미리9’, ‘밴’, ‘앰블란스’ 등 모두 6개 차종의 코란도 ’85시리즈는 운전자 및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로 고려한 특수안전 설계로 전복 위험이 없으며, 일반 승용차와 동일한 중앙집중식 계기판, 넓어진 전면 유리창, 전천후 냉난방 시스템, 배기량 2,238cc의 이스즈 고성능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4륜 구동의 장점을 한층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
1982년 7월 7일 출원 신청한 코란도 상표가 같은 해 11월 3일 공고를 거쳐 1983년 2월 16일 등록되어 3월부터 공식 사용되었다. ‘코란도’란 상표는 ㈜거화가 AMC의 4륜 구동 자동차 고유상표인 ‘JEEP’을 대신할 수 있도록 제정한 상표로서 그 어원은 ‘한국인의 의지가 담긴, 한국에서 개발한 4륜 구동 자동차의 대명사’로 ‘KOREAN DO IT’을 결합하여 ‘KORANDO’라고 표기하였다. 또한 '한국땅을 뒤덮는 차(Korean land over)', '한국을 지배하는 차(Korean land dominator)'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후 쌍용그룹의 동아자동차 인수와 함께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
1979년 3월 신진지프는 ㈜신진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그 해 11월 세계 최초로 디젤엔진(4BA1모델)을 탑재한 지프를 개발, 세계적인 유류파동을 극복할 수 있는 경제적인 차량의 양산에 돌입했다.
-
1974년 신진자동차공업㈜와 미국 AMC가 신진지프자동차공업㈜를 합작 설립해 기술제휴를 맺고 6기통 가솔린 지프인 CJ모델(4인승 캔버스탑/하드탑, 3인승 밴, 12인승 웨곤, 2인승 픽업)을 본격적으로 생산, 군납/수출/민관 수요처에 대량 공급하여 우리 나라 지프산업을 태동시켰다.
-
1969년 신진자동차공업㈜가 미국 KAISER 지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가솔린 지프를 조립 생산해 3,000여 대를 시판한 것이 우리 나라 민수용 지프 역사의 시작이다.
-
한국전에서 4WD로써의 위용을 발휘한 지프는 전후에 민간 교통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VIP용, 일반 승용으로서 인원 수송 수단 뿐만 아니라, 폐허가 된 이 땅에 건설, 산업 등의 용도로 트럭과 함께 동원되어 국가 재건에 이바지 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전쟁에 사용되었던 지프를 불하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불하된 낡은 지프도 고관이나 부자들의 전유물로 사용되어 일반인들은 아예 지프와 무관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
한편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미군의 지프를 개조한 소련제 지프를 한국 전쟁 때 북한측에 공급하여 미군과 소련군의 지프대결이 벌어지기도 했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 미군의 지프는 한국군으로 불하되기 시작하여 고위장성들과 정부 각료 인사들이 즐겨 애용했었다.
-
흥남 철수와 1.4후퇴 때 피난민들을 대거 피난시키는 작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지프는 1953년 6월 27일 휴전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에서 군수품 보급은 물론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2차 대전 이후 최대 활약을 하게 되었다. 특히 통신 장비를 장치한 지프는 포병 및 전투기들이 북괴군의 산악 요새들을 정확히 폭격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으며, 후방에서는 침투한 적의 간첩을 색출하고 소탕하는 기동성 있는 헌병차량 및 인원 수송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
한국 전쟁에서 지프의 역할은 2차 세계대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북으로 갈수록 지리적인 요건이 주행이 불가능한 산악 지형이 많아 지프의 효율이 매우 떨어졌다. 이러한 지형에서 지프의 역할은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전선과 후방의 연결 및 전선에 각종 군수품을 보급하는데 가장 유효한 수송장비로 각광을 받았다.
-
산악 지역에 사는 야생양을 뜻하는 BIGHORN
-
지구상 가장 큰 공룡이었던 테라노사우르스를 뜻하는 TERRANO
-
빠르고 날렵한 산고양이를 뜻하는 미쓰비시사의 PAJERO.
-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의 몰락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으나 한국 동란에 의하여 경제적 버팀목을 만들어 중공업 분야에 투자가 시작되었고, 특히 자동차 분야에 투자가 집중 되었으며, 4WD 차량은 유럽과 미국에 비해 늦게 출발하였으나, 당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누리며 전 세계에 수출했다. 또한 1980년도 이후에 전후 세대들의 4WD 차량 선호 성향이 급격히 증가해 당시 가장 많은 4WD 모델을 생산했다. 사진은 도요타의 HiLUX-SURF
-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인 1950년도에는 미 육군에서 윌리스사에 제2세대 지프인 M-38의 개발에 대한 생산 오더를 내리고 한국전쟁의 시작을 계기로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이 탑승하고 상륙한 지프를 필두로 M-38 지프가 한국 전쟁에 대거 투입되어 상륙전은 물론 아군의 후방 지원, 북괴군의 퇴로 차단 등 초기부터 그 막강한 기동력을 발휘했다.
-
1945년 9월 2일 항복 문서 조인을 위해 일본 야마시타 장군과 참모들이 지프에 탄 채 필리핀 루손섬에서 Baguio시로 가고 있다.
-
발견자, 모험의 뜻을 내포한 DISCOVERY.
-
2차 대전 후 미군이 남기고 간 지프는 짚시나 유랑자들이 타고 다녔으며 농사용 차량으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전후 세대들의 자유로운 삶 추구에 따라 지프 구조를 기본으로 한 4WD 차량을 생산했다. 영국은 2차 대전 시 미국 포드사에서 임대한 피그미 지프를 변경하여 새로운 개념의 SUV를 만들었고, 독일은 2차 대전 시 전장을 누볐던 G-5를 기본으로 하여 지프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사진은 방랑자를 뜻하며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이미지를 내포한 영국 랜드로버사의 RANGE ROVER
-
레저 생활을 전파하는 4WD 차량의 선구자임을 자처한 GM사의 BLAZER.
-
개척정신을 표방하는 포드사의 EXPLORER.
-
인디안 부족의 이름을 본 딴 Station Wagon의 CHEROKEE.
-
탄생부터 2차 대전까지 군용은 물론 일반용으로도 커다란 역할을 수행해 온 지프는 2차 대전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온 군인들과 젊은이들의 애차가 되어 미국을 누비게 되었다. 지프는 승용, 레저 및 농/축산업용으로 용도를 넓혀갔다. 이어 윌리스 오버랜드사는 군용보다 맵시 있게 외관을 다듬은 민수용 지프 ‘CJ-2A’를 1945년부터 생산했고, ‘CJ’ 시리즈의 지프는 미국 4WD의 대명사인 RANGLER 및 CHEROKEE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
첫 번째로 상륙한 버마 전선에서부터 지프는 확실한 실용가치를 발휘했다. 대형 트럭이나 중장비를 끌어들일 수 없는 버마의 밀림과 늪지에서 군수품을 수송하는데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으며, 엉덩이조차 붙일 수 없는 오지에서는 평평한 지프의 후드가 작전 테이블이나 식탁으로 이용되었고, 지휘관의 연설 무대가 되기도 했다. 남태평양 고도의 밀림에서, 필리핀의 산악에서 지프는 미군들의 승용차이며 소방차, 앰뷸런스, 침실, 오락실 등 만능의 힘을 가진 ‘그 무엇’이었다.
-
태평양 전선에서 지프의 역할은 유럽 전선과 크게 달랐다. 시가지가 잘 발달된 유럽과는 달리 동남아의 우기가 많은 열대기후와 험로, 산악 지대 등 대륙과 많은 섬의 각종 지형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속에서 지프의 역할은 더욱 돋보였다.
-
벨지움의 벨지전투 때 벨지움의 사병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그때 미국 지프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검문소 앞에서 정지했다. 운전을 하던 일등병 뒷자리의 장교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통과시켜줄 것을 요구하자 벨지움의 사병은 이들을 체포했다. 항의하는 미군 장교를 붙잡아 검문을 하면서 사병이 하는 말 “둘이서 탔을 때 미군은 장교가 직접 운전을 하거나 아니면 높은 사람이 운전병 옆자리에 않는데 독일놈들은 그걸 모르지.“ 이러한 일화는 미군과 지프의 관계를 잘 말해주는 단편적인 일화인데 요즘도 지프의 상석은 통상 운전자 옆자리로 알려져 있다.
-
북아프리카 어느 전선의 프랑스 초소에서 두 명의 프랑스 병사가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저녁 무렵 길 저쪽에서 미군 복장의 장교와 사병 대여섯 명이 초소를 향해 걸어와 “우리는 00전선에서 ㅁㅁ전선으로 이동하는 미군이다”라고 신분을 밝히며 초소를 통과했다. 그들이 얼마쯤 걸어가자 한 프랑스 초병이 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모두 쓰러뜨렸다. 그들의 소지품을 면밀히 조사해 보니 연합국 후방을 탐지하러 가는 독일군 첩자로 밝혀졌다. 후에 총을 쏜 프랑스 병사는 “그들은 미국 패잔병이 아니며 전선을 이동한다고 했는데 미군들은 이동할 때 걸어서 이동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항상 지프로 다닌다”고 말했다.
-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지프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영국의 처어칠 수상
-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에 선전포고 하기 전 이미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깊숙히 침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본과 개전을 한 이래 미국은 동남아와 태평양 제도를 되찾기 위해 1943년 대량의 지프를 태평양 전선에 투입했다.
-
전장에서 시간이 갈수록 지프는 그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보병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전선의 파트너로 기민한 전진을 위한 최고의 보조장비가 되어 전선에서 도보나 탱크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하며 전투 기본 장비인 자동화기, 박격포, 탄약, 통신장비의 수송은 물론 전선 상황과 사용 용도에 맞게 앰뷸런스, 인원, 화물 수송용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는 등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미국은 전선에 지프를 대량 투입했고,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의 전격기동작전을 주도하며 서서히 전투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독일군들은 연합군의 모든 GI들이 지프를 타고 다닌다고 믿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
2차 대전 초기 독일의 기동력에 놀란 미국이 이상적인 소형차 지프를 만들었고,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첫 번째로 투입된 곳이 독일 벤츠의 G-5 4WD가 전선을 장악하고 있던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전쟁터였다. 전투에서 지프는 작은 차체와 기민한 기동력으로 기병대를 대체하는 것은 물론 독일의 기동력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이상적인 소형 군용차임이 초반에 입증될 수 있었다.
-
E.C.SEGAR의 만화 ‘뽀빠이’에서 등장한 요술 강아지 이름을 본 떠 JEEP라 불렀다는 설과 FORD사의 차량명 ‘G.P(General Purpose)’에서 JEEP이 유래되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
포드사는 입찰 경쟁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미 육군의 지프기밀보호책에 따라 2,150대의 위장용 지프를 발주 받아 윌리스 엔진을 얹어 생산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윌리스사가 최초 발주분 1만 6천대를 생산하는 동안 포드사는 1차 테스트에 합격한 뒤 공차 중량이 무거워 다시 2,160파운드로 감량한 피그미가 2차 필드테스트에서 윌리스에게 밀리자 시작품인 피그미 1,500대를 임대조건으로 영국으로 보냈다. 지금 그 유명한 영국의 4WD 차량인 랜드로바의 탄생도 미국 지프 개발이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한 셈이다. 그 후 위장용 지프를 생산하던 포드사는 전쟁이 계속되며 지프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윌리스사의 하청을 받아 GP-W라는 윌리스 지프를 종전 때까지 만들게 된다. 지프를 개발하는 동안은 물론 양산되는 동안에도 가볍고 작은 차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동력과 힘을 지닌 4WD의 기술적 체계를 집대성 했으며,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가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휠에 통고무 타이어가 붙은 스페어 타이어를 부착하여 계속 전진하게 하는 장치 등 미 육군과 자동차업계는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룩해 냈다.
-
미 국방성과 정식 양산 계약을 맺은 윌리스사는 최초의 지프 모델인 MB를 제작번호 100,000을 1호로 생산을 개시했다. 그런데 윌리스의 MB 지프는 윌리스사의 고유 모델과는 약간 다른 구조를 가진다. 윌리스사에 낙찰은 되었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최고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3개 사가 만든 시작 차량의 장점을 모두 끌어 모아 기본형을 만든 그야말로 미국의 영웅으로 탄생한 것이다. 윌리스사의 기술 전무인 델마로즈가 설계한 4기통 소형 엔진을 얹은 미국 자동차 기술의 정수인 지프는 탄생과 함께 엄청난 기밀 보안 속에서 제작라인의 위장 2원화 등 혁신적인 기술집약 만큼 혁신적인 대접을 받았다.
-
짧고 뭉툭한 궤짝 모양의 처음 보는 자동차를 테스트 하는 날, 참석한 육군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노련한 군 시험관의 엄격하고 인정사정 없는 테스트를 무난히 돌파하며 세계 자동차 역사에 지프의 위대한 장을 여는 서막을 올린 것이다. 1940년 9월 버지니아 알링턴과 매릴랜드 발티모아에 있는 유군 병기창에서 테스트를 받아 무난히 합격한 3사의 지프는 다시 1차 발주로 각각 1500대씩을 만들어 최종 필드테스트에 임했다. 장기간 진행된 필드 테스트는 알라스카의 설원과 험로, 하와이의 정글과 늪지대, 텍사스의 사막 지대 등 미국 전역의 모든 지형과 기후조건에서 적응 능력을 평가했고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한 시작품들은 대부분 임대 조건부로 연합국인 소련으로 보내졌다.
-
이에 미 국방성은 1940년 7월 13일 일요일 오전 30여 년간 자동차분야의 권위자이여 디트로이트 최고의 자동차 엔지니어인 칼 프로브스트와 긴급히 협의하여 새로운 차량을 입찰에 붙이며 정식 사양을 공개했다. 국방성의 요구 조건은 공차 중량이 1,308파운드(590kg), 차의 길이가 3m이내여야 하며, 최소 ¼톤(250kg) 이상의 적재 능력을 지니며, 40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하고 산악 전투 등 오지에서의 활동을 고려하여 힘과 등판능력이 탁월한 4륜 구동의 액슬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8월까지 벼락치기로 납품해야 한다는 응찰 조건에 포드, 윌리스오버랜드, 밴텀 등 3개 회사가 밤을 새워가며 제작하여 제1차 입찰에 들어갔다. 그러나 첫 테스트에서 공차 무게가 1,308파운드일 경우 성능이 제반 조건 보다 훨씬 빈약한 차로 판명되어 튼튼하게 차체를 보강해야 된다는 판단아래 미 육군은 공차무게를 2,160파운드(980kg)로 대폭 늘렸다. 이렇게 무게 제한을 대폭 완화했지만 밴텀사의 지프만이 2,030파운드로 간신히 합격했고 포드와 윌리스사는 차의 무게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칼 프로브스트에게 미리 정보를 빼냈던 팬텀사가 최종 낙찰 조건에 부합하기는 했으나 당시 파산 직전의 경영 상태에 놓였던 팬텀은 윌리스오버랜드사에게 최종 낙찰의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
1940년, 2차 대전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나면서 미 육군은 나치의 우세한 기동력에 밀리며 당황하고 있었다. 이에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가 지상기동력인 소형 수송 수단의 전면 재검토였다. 미 국방성은 당시 독일의 월등한 기동력의 원천이 벤츠 G-5라는 소형 4WD 자동차란 것을 전선에서 실감했으며, 한편으로는 유럽의 정보망을 통해 독일 자동차설계의 제1인자 포르쉐 박사가 히틀러의 지시로 개발한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다시 개조해 야전용 4WD 차량을 새로 개발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미 국방성은 이미 추진 중에 있던 각종 험한 상황에서의 야전 전투에 필요한 소형 차량의 개발을 급히 서두르기 시작했다. 미군은 1930년대 중반 이미 3명 정도의 완전 무장한 군인들을 싣고 어떠한 전선이라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으며, 평화 시에도 민간인들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차량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첫째 조건은 4WD여야 하고 지구상의 모든 기후와 지형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¼톤 적재 능력의 경량차여야 했다. 당시로서는 고도의 기술과 획기적인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예고하는 엄청난 계획이었다. 모험과 도전 그리고 개척정신을 가진 당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이 조건에 맞는 자동차를 시험적으로 계속 개발해 냈다. 그러나 당시 개발된 4WD 차량은 기존의 트럭이나 트랙터를 개조한 원시적인 모습의 지프에 머무르고 있었다.
-
1차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전후 독일 내에서 전차 개발이 금지되자 그 대용품으로 4WD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해 현재까지도 명성이 높은 벤츠의 G-WAGEN의 원조가 되는 G-5를 1937년에 생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이 월등한 기동력으로 미국과 연합국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으로 하여금 1940년 그 위대한 전쟁 영웅 ‘지프’를 탄생시키게 하는 아이러니를 엮어낸다.
-
실질적인 지프의 시조로는 1930년대 포드 1½톤 트럭의 개조와 함께 개발이 시작된 ½톤 포드였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무거운 차체를 가볍게 하고 힘이 센 대륙횡단용 무기, 병력 이동차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포드사는 1½톤 포드의 구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바퀴를 구르게 한 4WD를 개발했다.
-
1908년 미주 위스콘신에서는 실질적인 4WD 지프형 차량의 시조격인 ‘베틀쉽(Battleship)’이라는 차량을 제작했는데, 당시의 비포장 도로에서 발군의 성능을 발휘하여 관광안내 차량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속도감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고장이 잦아 얼마 후 자취를 감추는 등 고속 주행 형식의 4WD는 쉽사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1903년 오스트리아의 다아믈러사가 최로로 OFF-ROAD 전용의 장갑차와 트럭을 개발했다. 이것은 물론 4WD였으며, 4WD가 야전에서 전투용으로 활약하던 2차 대전까지 군용으로 개발된 시초이기도 하다. 이는 전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했던 것이니 만큼 오직 실전용, 실용성만을 강조한 특수차의 개념이다.
-
4WD의 효시는 1902년 네덜란드의 스파이커 형제가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기술에 벤츠의 노하우를 결합해서 완성한 것으로 6기통의 8,000cc 65마력의 가솔린 엔진에 2단 변속의 Center Differential을 부착한 4바퀴 구동형의 ‘스파이거 4WD’이다.
-
소형 차체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강력한 기동력, 서부 개척자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강인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고층 빌딩 숲에서는 개성과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는 4륜 구동(4WD) 차량은 이제 세대와 성별을 뛰어 넘어 날로 선호도가 높아가고 있다. 4WD란 말 그대로 네 바퀴가 모두 구르는 방식으로 영어로는 ‘Four Wheel Drive’로 쓴다. FWD로 쓰지 않는 이유는 2륜 구동 중 전륜 구동(Front Wheel Drive)인 FF 방식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Four를 아라비아 숫자 4로 표기하는 것이다. 승용차를 구동방식에 의해 분류하면 2륜 구동 차량은 전륜 구동식(FF : Front Engine, Front Drive)과 후륜 구동식(FR : Front Engine, Rear Drive)으로 나뉘며, 4륜 구동 차량은 상시 4륜 구동식(Full Time 4WD)과 일시 4륜 구동식(Part Time 4WD)으로 나뉘는데 상시 4륜 구동은 계속 4륜 구동으로 운행되는 것을 말하며, 일시 4륜 구동은 평상 시에는 전륜이나 후륜만을 구동하여 운행하다가 필요 시 4바퀴를 모두 구동시켜 운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
2000년대 들어 그 종류와 활용 가치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4WD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대부분 군용 지프를 먼저 연상하였다. 4WD 차량이 진가를 발휘한 것이 2차 대전 때였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 윌리스사의 지프가 소개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후 지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권위와 명예의 상징으로 대두되어 관공서나 정부 산하 기관에서 주로 사용하였으며, 이에 여러 메이커에서 군용 지프를 민간용으로 개조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강인함과 권위주의의 대명사이던 지프가 평화시대의 개막과 함께 매장될 뻔 하였으나, 이러한 전천후 다목적 용도가 일반인에게 충분히 인식되면서 이제는 자동차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차량의 가치가 시각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기능적인 면도 함께 충족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유행보다는 개성과 경험을 중시하고 생활의 일부로서 자신의 모든 면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생활패턴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의 선택은 4WD 차량으로 향해졌고 다양한 기능과 높은 안전성, 그리고 개성 표현을 실현하는 4WD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